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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이의 일상보고/끄적끄적 하루일기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인어공주는 거품이 되지 않았다. 혼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by Darai 201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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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4)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8.5
감독
이누도 잇신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우에노 주리, 아라이 히로후미, 신야 에이코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일본 | 116 분 | 200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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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는 거품이 되지 않았다. 혼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조제, 어두운 골방을 뛰쳐나가자.


 

 

매일 새벽이면 유모차를 끌고 가는 노파가 있다. 마약운반책이라고도 하고, 보물이 들었다고도 하고, 시체가 들었다고도 하고,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유모차 속에 있는 조제를 발견한다. 그녀 식칼을 휘두르며 매섭게 바라보는 모습이 만만치 않다.

그녀가 매일 새벽 위험을 무릎 쓰고(호기심 가득한 한가한 이들의 공격을 막아가며) 산책을 나가는 이유는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온통 어두컴컴한 골방에 갇혀 있던 조제는 바깥세상이 궁금하다.

꽃이 보고 싶고, 하늘이 보고 싶고, 사람이 보고 싶다. (너무 소박해서 눈물겹다.)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다지만, 때때로 내 삶을 어딘가로 이끌어가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이라는 그 허황된 가정만이 위로가 되는 순간들도 있다.

만약에 조제에게 두 발이 있었다면, 그녀를 아끼고 사랑해 줄 부모가 있었다면 그녀는 결코 그 골방에서 안식을 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쿠미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조제’라고 했다.

책 속에 조제는 두 발을 나무줄기에 기대고, 바람을 느낀다. 헤어지는 남자를 쿨하게 떠나보낸다. (‘나도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다.’라고 생각하다니, 그 만약이란 얼마나 비참한 위로인지. 그리고 참으로 현명하다.) 뼛속까지 자유로운 조제. 츠네오는 금발머리 조제의 홀로 선 자유가 부러웠던가.

그래, 조제 골방을 나갈 필요가 있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기꺼이 두 발이 되어줄 츠네오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츠네오. 미숙한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님을 기억하렴.


 

 

이별의 이유를 자신이 도망친 것이라고 말하는 남자, 츠네오.

그 솔직함에 나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의 순수함이 조제의 마음도 움직였으리라.

장애를 가진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비정상적이거나,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일(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사랑이 아니겠지만)은 아니다. 물론 감수해야할 것들이 생기겠지만, 가난한 사람과 사랑을 하건, 나이가 어린 사람과 사랑을 하건 어떤 경우이든 감수해야 할 것들이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그들의 사랑을 흔들리게 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는 게 마음에 든다.)

조제는 츠네오의 등에 업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밝은 대낮에 화려한 불빛과 분주한 사람들이 있는 바깥세상을 나올 수 있었던 건 츠네오의 든든한 등과 두 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등의 업혀 나오는 것이 그녀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토록 원했던 일이고, 일평생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시도를 하는 것은 기대감과 두려움을 함께 동반한다.

아마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이제 사랑을 시작하게 된 소녀 조제는 떼쓰고, 기대고, 응석 부리는 세상의 모든 여자아이들처럼 행동했을 뿐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사랑에 빠진 것이 기특하고, 세상에 나온 것에 마냥 좋아하는 어린 여자 아이일 뿐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호랑이를 보러 오겠다고 다짐했다는 조제. 호랑이를 같이 보러 와준 것에 츠네오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그녀가 그를 백 퍼센트 신뢰한다는 것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녀가 처음 휘둘렀던 식칼을 생각하라. 그 얼마나 살의 가득한 눈초리로 그를 대했던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츠네오는 조제의 그 믿음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변하지 않을 것이란 조제의 믿음을 지켜 내지 못할 거란 그의 두려움.

그러나 그것 또한 당연하다.

영원하리란 약속이야말로 절대로 지킬 수 없는 거짓 약속이니까.

 

 

 

 

 


괜찮아. 여전히 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걸.


 

 

해변에 버려진 굴러다니는 조개껍데기가 왜 아름답지 않지?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동화는 참 잔인하고, 그래서 더욱 슬프다.

조제는 츠네오의 등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또 다시 그 빛 한 점 없는 그 골방으로 다시 돌아갈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녀는 당당하게 휠체어를 끌고 두 발 달린(?) 사람들 틈을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인가.(진정한 해피엔딩이 이것이다.)

그녀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자유를 얻었다.

언젠가 츠네오는 조제를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언젠가 조제도 츠네오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또 새로운 삶을, 생활을 사랑하게(살아가게) 될 것이다.

한 때는 생명을 지녔던 조개껍데기가 해변을 굴러다닌다고 해서 아름다움이 소멸되는가. 그것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생명을 지녔던 그때의 그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들의 아름다운 성장기는

오랫동안 움츠리고만 있었던 내 몸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나도 조제처럼,

골방을 나와,

가장 무서운 호랑이와 눈을 맞추고 (한번 비웃어 준 뒤에),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리라.

 

 

 

 

 

 

내 멋대로 별점은 ★★★★

 

 

[2008/10/19 01:51 작성된 글을 옮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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